왜 우리가 지적 호기심에 지원금을 대주어야 하는가? - 로날드 레이건, 1980 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과학과 학문의 발전보다 더 우리의 후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없다. 어떤 나라에서도 지식은 공공 복지의 초석인 것이다. - 조지 워싱턴, 1790 년 국회 연설에서

1992 년 10 월 모하비 사막과 푸에르토 리코의 석회암 침식 계곡에서 외계 지능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계획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 상 가장 유망하고 강력하고 포괄적인 탐사가 될 것이었다. 나사(NASA)가 이 계획을 주관하여 시행하며, 온 하늘을 10년의 기간에 걸쳐 유례없는 정밀도와 주파수 대역에 걸쳐 탐사할 예정이었다. [중략]

겨우 1 년 뒤 의회는 이 계획을 취소하였다. SETI 는 당장 필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너무 비싸다 등의 이유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상의 모든 문명들은 우주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탐구하기 위하여 자원을 어느 정도 할당하였었다. [중략] 그리고 너무 비싸기는 커녕 SETI 계획에 드는 예산은 매년 전투용 헬리콥터 한 대 값에 불과하다.

나는 왜 이토록 비용에 민감한 국회의원들이 국방 예산에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지 궁금하다. 소련은 붕괴되었고 이제 냉전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 예산을 모두 합치면 매년 3천억 달러(약 300조 원)이 훨씬 넘는다. (정부 내 다른 부처의 예산도 자세히 살펴보면 부자들을 위한 복지 예산에 불과한 것들이 무수히 많다.)

미국 기업들의 연구 개발비는 최근 전면적으로 감소하였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개발비 또한 감소하였다. (1980 년 대에 오직 군사 연구 개발비 만이 증가하였다.) [중략]

기초 연구란 과학자들이 호기심을 따라 자유로이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떤 목전의 실용적인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고, 많은 경우 그들이 애초에 과학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사회에게는 유익하다. 인류에게 큰 혜택이 된 중요한 발견들은 그런 경로를 거쳐 얻어졌다. [중략]

우리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우리 삶을 안정시켜줄 수 있는 방향을 택하여 연구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만큼 영리하지 못하다. [역주: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호를 세이건이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중략]

맥스웰 같은 사람에게 연구비를 주었다면 단순히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과학을 지나치게 장려하는 것 같아 보였을 것이며, 현실적인 국회의원들이 신중치 못한 판단을 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중략]

맥스웰은 전자기학의 기본적인 방정식을 세웠을 때, 라디오나 레이다, 또는 텔레비전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뉴튼은 달의 운동을 최초로 이해했을 때, 우주 비행이나 통신 위성을 꿈꾸지 않았었다. 뢴트겐은 투과력이 높은 신비로운 X-선을 연구할 때, 의학적인 진단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뀌리는 엄청난 양의 우라늄 광으로부터 미소량의 라디움을 추출하는 중노동을 하면서 암 치료를 생각하지 않았었다. 플레밍은 곰팡이 주변에 세균이 없는 부분을 발견하였을 때 항생물질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건질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왓슨과 크릭은 DNA 의 X-선 회절 무늬를 들여다보면서 유전병의 치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었다. 로울랜드와 몰리나는 할로겐 원소들이 성층권에서 어떤 광화학적인 역할을 하는지 연구를 시작하면서 CFC가 오존층 감소를 일으킨다고 문제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중략]

기초과학의 응용은 필연적으로 미래에 -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뒤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어떤 결과가 실제적인 가치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사업가나 정치가들이 예측할 수 있겠는가? 자유시장주의가 오직 단기간의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 그 증거로 현재 미국에서 기업 연구 개발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 이는 기초 연구를 포기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호기심에 의해 시발되는 기초 연구를 포기하는 것은 종자 볍씨를 먹어버리는 것과 같다. 겨울 동안 먹을 것이 조금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무엇을 심을 것이며 무엇을 거둬 우리와 우리 자손이 그 다음 겨울에 먹을 것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겠는가?


과학을 사이비 과학(또는 "무오류"적인 계시)과 비교할 때 가장 선명하게 구분되는 점은 아마도 과학이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판 가능성을 훨씬 더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을 완고하게 부정한다면, 그런 실수와 그로 인한 심각하고 근원적인 착오가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용기있게 우리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하여 뼈아프게 반성은 하겠지만, 우리의 성공 확률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만일 과학의 비판적인 방법 체계를 전수하지 않고 과학적 발견과 성과만을 가르친다면 - 그것이 아무리 유용하고 심지어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지라도 - 어떻게 보통 사람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 경우 이 둘은 모두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러시아나 중국에서 한 때 그 구별이 쉬웠던 적이 있었다. 정부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있는 과학이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혼란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급변과 함께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제약이 느슨해지면서, 확신에 넘치거나 카리스마 적인 주장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가 솔깃해할 만한 주장들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아무리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도 권위를 떨쳤다.

과학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면, 위대한 발견 뒤에 있었던 실제의 우여곡절이 담긴 역사와 종종 과학자들 자신조차 얼마나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하면서 불안해하였는지까지 함께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막 싹을 돋우는 과학자들을 위한 거의 모든 과학 교과서가 이 부분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 자연을 꾸준하게 탐구한 결과를 정제하여 얻어진 지혜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 번잡한 정제 도구를 세세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과학적 방법 체계는 비록 딱딱하고 까다로와 보이지만, 과학적인 성과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Perhaps the sharpest distinction between science and pseudoscience is that science has a far keener appreciation of human imperfections and fallibility than does pseudoscience (or "inerrant" revelation). If we resolutely refuse to acknowledge where we are liable to fall into error, then we can confidently expect that error - even serious error, profound mistakes - will be our companion forever. But if we are capable of a little courageous self-assessment, whatever rueful reflections they may engender, our chances improve enormously.

If we teach only the findings and products of science - no matter how useful and even inspiring they may be - without communicating its critical method, how can the average person possibly distinguish science from pseudoscience? Both then are presented as unsupported assertion. In Russia and China, it used to be easy. Authoritative science was what the authorities taught. The distinction between science and pseudoscience was made for you. No perplexities needed to be muddled through. But when profound political changes occurred and stricture on free thought were loosened, a host of confident or charismatic claims - especially those that told us what we wanted to hear - gained a vast following. Every notion, however improbable, became authoritative.

It is a supreme challenge for the popularizer of science to make clear the actual, tortuous history of its great discoveries and the misapprehensions and occasional stubborn refusal by its practitioners to change course. Many, perhaps most, science textbooks for budding scientists tread lightly here. It is enormously easier to present in an appealing way the wisdom distilled from centuries of patient and collective interrogation of Nature than to detail the messy distillation apparatus. The method of science, as stodgy and grumpy as it may seem, is far more important that the findings of science.